60-70년대 일본차 경쟁력의 핵심 - 품질을 유지한 원가절감
1980년 대우기획조정실이 번역해서 낸 일본책 "위기에서의 탈출: 일본 7대 기업의 신전략"에 소개된 토요타 자동차 관련 내용입니다.
한 차동차 판매 관계자는 말한다.
"1인당 GNP가 자동차 가격에 접근하면 할수록 자동차의 대중화는 진행되고, 이 양자의 수준이 같아졌을 때 자동차의 대중화는 완성된다. 자동차는 status symbol에서 서민의 발 구실을 하게 됐을 때 그 시장은 비로소 성숙한 시장이 된다. 이 점에서는 구미나 일본이나 같다."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백만엔 선에 이른 것은 1974년, 이 해에 일본의 자동차 대중화는 완성된 셈이다.
그렇다고 자동차 메이커가 그저 우두커니 국민소득이 오르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은 아니다. 메이커측에서는 코스트다운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닛산) 블루버드와 (토요타) 코로나의 BC전쟁은 1964년에 시작되었는데 이 해부터 오일쇼크 때까지 자동차가격은 실질적으로 단 한번도 오르지 않았다. 실질소득과 인플레이션을 합쳐 연간 20% 이상의 소득증가가 있고 또 자동차가격은 고정되어 있으므로 소득이 가격을 따라잡는 속도는 빠르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해마다 10%씩 오르던 시절에 유독 자동차 값만 제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코스트다운, 더우기 연간 10%라는 맹렬한 노력이다.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는 이 불가능한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 그리고 이 동안의 맹렬했던 코스트다운이야 말로 오늘날 일본의 자동차가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 되었다.
외국에서의 일본차의 인기는 고장이 없고, 애프터서비스가 좋고, 연료비가 적게 드는 세 가지 장점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여기서 여러가지 장점을 갖추었더라도 그 자동차가 국산(외국인으로서는)의 라이벌 차에 비해 2배가 더 비싸다면 팔릴 리는 없다. 이런 장점을 가진 차가 자국산 동급차와 가격이 같거나 비싸봤자 고작 10% 정도이기 때문에 살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몇년 전까지 모 자동차 부품 메이커에서 근무하던 기술차한테 코스트다운에 대해 물어 보았다.
"제가 다니던 회사는 메이커의 시트 하청 회사였습니디만, 아무튼 메이커의 지상명령은 "반년간 5%의 코스트다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지독했냐면, 시트 속에 깐 스프링 말입니다. 이걸 가령 10번 감던 것을 9번으로 해서 강도나 편안하기는 똑같은 수준으로 유지시킬 수 없겠는가, 혹은 스프링으로 쓰이는 강선은 더 가늘게 할 수 없는가, 시트를 바디에 결합시키는 작업은 전기를 사용하는 점용접으로 합니다만, 어떤 부분은 5개의 용접점을 4개로 줄이고도 그 강도는 어떻게 유지시킬 것인가. 아무튼 코스트다운의 지상명령 때문에 환장하겠더군요. 밤낮 그런 짓만 했지요."
반년간에 5%의 코스트다운, 이것으로 연간 10%의 인플레이션을 커버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품질의 악화는 막을 수 있었던 점. 바로 여기에 일본의 자동차가 국제상품이 될 수 있었던 최대의 비밀이 있다.
1964-1970년 코로나 카탈로그
코로나의 라이벌인 닛산 블루버드 (1967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