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부터 거의 30년간 일본 닛산의 차를 면허생산하다가 1986년 처음으로 고유 모델을 만든 대만의 Yue Loong(裕隆汽車)의 Feeling에 대한 1987년 말레이시아 신문 기사입니다.
공기 저항을 많이 낮췄다고 칭찬하는데 역시나 부품들을 일본 닛산으로부터 공급 받는다고 했네요.
그리고 니시무라 도시오라는 일본 사람이 쓴 책을 번역한 1983년 책 '대만 vs 한국 경제비교' 182쪽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대만의 자동차업계는 1981년말 裕隆汽車, 福特六和, 三富工業, 三陽工業, 中華汽車, 羽田機械의 6사 체제로 모두 미국, 일본, 프랑스의 외국기업과 자본 혹은 기술을 제휴하여 승용차, 트럭, 버스를 생산했는데 총생산능력은 222,000대이고, 생산대수는 134,000대로 평균가동률은 60%였다.
...
톱메이커의 裕隆이 조립생산하는 승용차는 닛산의 세드릭, 로렐, 바이올렛, 써니의 4종으로 국산화율은 70%, 이중 쑤리라 불리는 써니 DX(1,200cc)의 국내가격은 1981년말에 23만 5천元으로 당시의 외환율로 6,200달러였다. 이는 중급 샐러리맨의 월수 약 2만元에 비해도, 동급의 국제평균가격 4,000달러에 비하여도 비싸다.
...
대만은 1979년 8월에 '20만대 프로젝트의 자동차발전방안'을 발표하여 해외 메이커에 대만 진출을 호소하였다. 그것은 정부와 합작으로 에너지절약형 국민차의 신예 공장을 설립하여 완성차의 반을 수출한다고 하는 조건이었다. 이 구상은 난립하면서도 안일주의에 빠진 자동차업계에 대한 정부의 불만에서 생겨났다. 업계는 수입차 금지의 장벽에 보호되어 좁은 대만 시장 속에서 높은 가격과 소량 생산에 안주하여 10년이 지나도 20년이 걸려도 국산화율은 70%로 기술은 국제 무대에 훨씬 뒤떨어져 수출차조차 못내는 실정에 대한 불만이었다."
裕隆은 1986년에 Feeling이라는 고유 모델을 내놓고 수출을 시도했지만 현대 엑셀만큼의 성공은 하지 못했고, 1995년에 단종되었습니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83년 Lancia Delta (0) | 2018.09.16 |
---|---|
1980년 Lancia Delta (0) | 2018.09.15 |
1976년 Lancia 광고 (0) | 2018.09.01 |
1988년 - 메르세데스 벤츠, BMW, 볼보, 사브에 도전하는 마즈다 루체 (0) | 2018.08.19 |
한달만에 3만대 판 토요타 크라운 최신형 (0) | 2018.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