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인구가 540만명에 불과한 북유럽의 소국인 덴마크의 해군이 주목할 만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연안방어 해군이었던 덴마크해군은 다국적 해외원정작전 및 평화유지활동에 대한 기여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덴마크정부의 발언권을 뒷받침할 수 있는 대양해군으로 탈바꿈하기 위하여 2척의 'Fleksibelt Stotteskib,' 우리 말로 옮기면 다목적 지원함인 압살론과 에스번 스네어를 작년 2월 25과 6월 21일 각각 진수시켰고 이 중에서 압살론은 비록 레이다를 포함한 전자장비와 무장의 설치가 완료되지는 않았지만 10월 19일 취역했다.
압살론형 다목적 지원함의 2번함 에스번 스네어
덴마크해군의 기원
덴마크해군이 21세기에 들어 새로이 건설하고 있는 전력구조를 살펴보기 전에 덴마크해군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면, 덴마크인들은 근대적인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 바이킹 시대에 롱 쉽(long ship)을 타고 북해를 건너 영국을 유린했던 바 있었다. 덴마크의 상비(常備) 해군의 시작은 1500년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의 한스 국왕이 '국왕의 배', 즉 군함을 만들고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해군 조선소를 세우면서부터이다.
덴마크 로스킬드의 바이킹 박물관에 전시된 롱 쉽의 상상도
17세기 덴마크의 인도양 진출과 18세기의 '중규모 대양해군' 그리고 19세기의 대재난
그로부터 116년 후 1616년 덴마크의 국왕 크리스티안 4세는 네덜란드 상인의 제안에 따라 설립된 덴마크 동인도회사에 동양 무역의 독점을 허락하는 특허장을 내렸고 1618년 6척의 덴마크 군함 및 무장상선과 1척의 네덜란드 호위함이 지금의 스리랑카로 떠났다.
덴마크 동인도회사는 1620년 인도 남부 동쪽에 있던 탄조르 왕국에 조공을 바치는 조건으로 코로만델 해안의 트랑케바르에 단스보그 요새를 건설하고 식민지 겸 무역의 거점으로 삼았지만 덴마크는 동양 무역에서 좀 더 일찍 인도양으로 진출한 네덜란드와 영국만큼 성공하지는 못했고, 대신 덴마크 군함과 무장상선들은 육지에서 막강했지만 바다에서는 맥을 못추었던 인도 무굴제국의 배들을 약탈하며 식민지를 유지할 비용을 벌었다. 무역을 하러 갔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은 해적질을 하며 먹고 산 셈이다.
트랑케바르(지금 이름은 Tarangambadi)의 단스보그 요새
1692~1744년 홀멘 해군 조선소의 모형
나폴레옹 전쟁이 시작된 18세기말, 덴마크는 비록 크기는 작지만 카리브해의 서인도제도(지금의 미국령 버진 제도), 아프리카 서해안의 기니아(지금의 가나), 그리고 인도 동해안의 트랑케바르에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이었고, 20세기의 전함에 해당하는 함포 74문으로 무장한 3급 전열함(戰列艦, ship of the line) 이상의 대형군함을 13척 보유한 어엿한 중규모 대양해군을 가지고 있었으며, 영국과 프랑스 어느 편에도 들지 않고 중립을 지켰다.
그러나 프랑스의 속국이 된 네덜란드의 식민지인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지금의 인도네시아)의 산물을 '중립국' 덴마크의 상선단이 덴마크해군함의 호위까지 받으며 네덜란드로 수송해서 이익을 챙기자 프랑스-네덜란드 봉쇄가 덴마크 때문에 뚫린 셈이 된 영국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1801년 4월 2일 넬슨의 코펜하겐 공격
게다가 중립국 덴마크의 해군력이 적국 프랑스의 해군력에 더해져 영국 본토 침공에 동원될 것을 우려한 영국은 1801년과 1807년 두차례에 걸쳐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을 공격, 1807년에는 격렬한 저항 끝에 항복한 덴마크의 모든 군함과 상선을 파괴하거나 나포해 갔다.
1807년 9월 5일 콩그레이브 로켓을 이용한 영국함대의 코펜하겐 포격
영국의 무자비한 공격에 분노한 덴마크는 프랑스의 동맹국이 되어 영국과 싸웠지만 1815년 프랑스의 패망에 따라 패전국이 되어 덴마크해군은 물론 덴마크의 전체적인 국력 또한 급격히 쇠퇴하고 말았다 (이 때 영국의 동맹국 스웨덴이 덴마크 영토였던 노르웨이를 집어삼켰다).
군함이 목제 범선에서 철체 증기기관선으로 바뀌던 19세기 초중반, 덴마크해군은 불과 9년 전만 해도 적국이었던 영국으로부터 외륜 증기선 키일(당시 덴마크의 영토였고 지금은 독일의 항구)을 1824년 구입해 근대화를 시작했고, 1844년에는 덴마크에서 건조한 선체에 영국에서 수입한 증기기관을 붙여 함정 국산화를 이루었다.
1864년 남부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방을 둘러싼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연합과의 전쟁에서 덴마크해군은 독일의 해안을 봉쇄하고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연합함대를 헬리골란트해전에서 격퇴했지만 덴마크육군이 패배하여 결국 덴마크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방을 잃고 작고 힘 없는 약소국으로 떨어졌고 덴마크해군 또한 소규모 연안해군이 되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다 - 제1차세계대전
1908년 완성된 헐루프 트롤레형 연안방어함 3번함 페더 스크람
북해 양안의 두 강대국 영국과 독일이 맞붙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의 제1차 세계대전 중 덴마크는 중립을 지켰다. 이 때 덴마크의 해군력은 1899년과 1908년 사이 건조된 경하배수량 3,735톤의 선체에 240mm 단장포 2문과 150mm 단장포 4문을 갖춘 헐루프 트롤레형 연안방어함 3척이 주력이었는데 이 연안방어함 3척은 1916년 5월 31일 덴마크 앞바다에서 벌어진 유틀란트해전에 동원된 영국 37척, 독일 21척의 드레드노트 전함/순양전함 중의 어느 1척에게도 제대로 대항할 수 없는 아주 약한 상징적인 전력에 불과했다.
명목상 중립이었지만 남쪽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럽 최강의 육군국 독일의 요구에 따라 덴마크는 영국해군이 발트해로 들어오지 못하게 북해와 발트해를 연결하는 해협에 기뢰를 부설할 수 밖에 없었고, 세계 최강의 해군국 영국도 중립국 덴마크를 거쳐 독일로 전쟁물자가 들어갈 수 있다며 독일을 해상 봉쇄하면서 덴마크까지 같이 봉쇄해 버려 북해를 지나 덴마크로 가는 배는 모두 영국해군함의 임검을 받았고 때때로 실은 물자를 압수당했다.
부질없는 중립에 대한 믿음 - 제2차세계대전
전쟁이 끝나고 1930년대의 덴마크해군은 280mm 3연장포탑 2개를 달고 1933년 취역한 독일해군의 신형 장갑함 도이칠란트에 대항할 수 있는 경하배수량 5,775톤의 선체에 280mm 연장포탑 2개를 단 "프로젝트 B" 연안방어함 설계를 1936년 10월에 내놓았다. 그러나 덴마크의 정치권은 물론 국민 대다수가 남쪽 국경을 맞댄 독일을 상대로 국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 건조에 이르지는 못했고, 육해공 3군 모두에게 실질적인 억지력을 갖출 수 있는 전력 증강은 없었다.
프로젝트 B 연안방어함 설계와 비슷한 핀란드해군의 일마리넨형 연안방어함
대신 중립국 덴마크의 주권을 외국군이 침해하는 것을 - 예를 들면 1940년 2월 17일 중립국인 노르웨이의 영해에 들어와 있던 독일 군수지원함 알트마르크를 영국 구축함 코삭이 덮쳐 잡혀있던 영국인들을 구출한 사건 - 막을 수 있는 정도의 전력만 허용되었고 해군의 주력은 여전히 낡은 헐루프 트롤레형 연안방어함 페더 스크람과 1914년 건조를 시작했지만 1차대전 때문에 외국으로부터의 무기 수입이 막혀 원래 달려고 했던 강력한 독일 크루프제 305mm 단장포 2문과 120mm 단장포 8문을 못구하고 결국 1923년에야 305mm 포보다 위력이 훨씬 덜한 스웨덴 보포스제 150mm 단장포 10문을 달고 완성된 연안방어함 닐스 유얼이었다.
원래 설계와 너무 다르게 완성된 연안방어함 닐스 유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1939년 9월 1일 제2차세계대전이 시작되고 7개월이 지난 1940년 4월 9일, 독일은 덴마크를 침공했다. 1930년대부터 국방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덴마크는 별다른 저항 없이 독일의 점령을 받아들여 명목상 독일의 '보호국'이 되었고 독일의 무력에 굴복한 덴마크정부는 독일의 요구에 따라 덴마크해군의 어뢰정 6척을 독일에 '임대'해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덴마크 국민과 독일 점령군의 사이는 차츰 나빠져 1943년 8월 29일 독일은 본색을 드러내고 '보호국' 덴마크의 주권을 완전히 강탈했고 이 때 덴마크해군은 독일의 손아귀에 떨어지지 않게 함정들을 자침 또는 좌초시켰다. 그러나 독일은 자침 또는 좌초된 함정들을 인양해서 덴마크해군의 함정 중에서 가장 컸던 닐스 유얼은 노르트란트로 이름을 바꿔 훈련함으로 썼고 페더 스크람도 이름을 아들러로 바꿔 해상 방공포대로 썼다.
1943년 8월 29일 자침한 페더 스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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