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세기의 gunboat(포함, 砲艦)는 연안 방어 및 얕은 바다에서의 작전을 염두에 두고 강력한 대구경포 1~2문을 함수와 함미에 달고 노를 저어 움직이는 배였고 19세기말~20세기의 어뢰정과 함대함유도탄으로 무장한 고속정에 해당합니다.
나폴레옹전쟁 때 덴마크해군의 gunboat
아래는 일본의 아오키에이치(?, 靑木榮一)씨가 1982년 쓰고 한국해사문제연구소의 최재수씨가 1995년 번역해서 내 놓은 "시 파워의 세계사 1 - 해군의 탄생과 범주(帆走)해군의 발달"에서 미국해군의 gunboat 건조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묘하게도 미국은 제퍼슨이 취임한 바로 그 해(1801년)에 또다시 새로운 전쟁에 말려들었다. (북아프리카) 트리폴리의 회교도 부족장과의 사이에 맺어졌던, 예의 해적단속 사례금조의 대상금 협상이 결렬되어 바로 햇수로 5년에 걸치는 트리폴리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1801년 7월에 미국함대는 지중해로 들어가 트리폴리를 봉쇄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미국해군은 봉쇄라는 단순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도 익숙해 있지 못하였으며, 또 완전히 봉쇄하기에는 함선의 척수도 너무 적었다. 첫번째와 둘째번까지의 원정군 사령관은 거의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그 뒤를 이어 제3대 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된 사람이 프레블(Edward Preble)이었다. 對프랑스전후, 많은 고급 사관이 은퇴하였는 바 프레블 자신은 당시 42세였고, 그 휘하의 함장이나 사관들의 대부분이 20대였다.
그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에 기지를 두고, 철저한 봉쇄작전을 폄과 동시에 트리폴리 각지에 활발한 공격을 가하였다. 그는 느슨해진 함내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군기를 바로 잡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젊은 사관들에게 특히 엄격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프레블의 목표는 이들 젊은 사관들이 용감하기는 하나 미숙한 개인 플레이로 시종하던 것으로부터 탈피하여, 사관의 임무에 대한 프라이드를 일생의 생활신조로 삼도록 하는데 두고, 직업 군인으로서 팀워크를 중시하도록 하는데 있었다. 그의 휘하에 있던 젊은 사관들은 '프레블의 제자(Preble's boy)라고 불리었는데, 그 중 많은 사람이 몇년 후의 영미전쟁에서 제일선의 유능한 지휘관으로 활약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트리폴리 봉쇄작전에서 무엇보다 부족하였던 것이 얕은 홀수의 포함(gunboat)이었다. 봉쇄를 뚫고자 하는 선박은 대부분이 소형선이어서, 대형 봉쇄함이 행동할 수 없는 해안 가까운 연안을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길이 71피트, 폭 18피트, 깊이 4피트 8.5인치, 32파운드포 2문을 장비한 승조원 20명의 소형함 40척이 급히 건조되었다 (요즘의 LCS에 해당).
그러나 이 포함의 건조가 엉뚱한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공화당이, 이야말로 미국의 실정에 꼭 맞는 미국해군용 함종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런 함종을 다수 갖추는 한 미국 해안의 경비는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그 후의 여러가지 건함 활동이 이 종류의 포함의 건조에 집중되어, 스토더트가 계획하였던 74문함(전열함, 戰列艦, ship of the line, 20세기의 전함에 해당)의 함재조차 이쪽으로 전용되고 말았다. 의회는 278척의 건조예산을 승인하였는데, 그 중 176척이 실제로 건조되었다. 소극적인 방어사상에 기초를 둔 이 계획은 미국해군의 발전에 그리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단기간에 걸쳐 많은 함정을 건조하였다는 면에서는 선구적인 사례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1805년에 트리폴리의 족장이 대폭적으로 양보해서, 앞으로 매년 바치는 공물을 없애고, 6만 달러의 몸값만 지급하면 트리폴리항 내에서 포획된 미국군함 필라델피아의 승조원을 석방시켜 주는 조건의 화해를 받아들여, 5년간에 걸친 트리폴리 전쟁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아래는 영국의 작가 Patrick O'Brian이 1970년에 쓴 오브리/마투린 시리즈의 첫 소설 "Master and Commander"에서 묘사된 스페인 바르셀로나 항구를 지키는 스페인해군 gunboat와 영국해군의 sloop(초계함?)인 HMS Sophie의 전투 장면입니다.
"The first shot sent up a white plume of water topmast high, right between the two vessels. Infernally good practice for a ranging shot, thought Jack (함장 잭 오브리), and a damned heavy ball.
The gunboats were still over a mile away, but they were coming up surprisingly fast, straight into the eye of the wind. Each of the three foremost carried a long thirty-six-pounder and rowed thirty oars. Even at a mile a chance hit from one of these would pierce the Sophie through and through. He had to restrain a violent urge to tell the carpenter to hurry. 'If a thirty-six-pound ball does not hasten him, nothing I can say will ever do so,' he observed, pacing up and down, cocking an eye at the dog-vane and at the gunboats at each turn."
나폴레옹전쟁 때 덴마크해군의 gunboat들에게 포획당한 영국해군함 Tick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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