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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실패로 끝난 IT 독립프로젝트 - 주전산기 타이컴

Humancat 2013. 8. 5. 09:05

옛날 신문에서 "주전산기", "TICOM 91" 등등을 본 기억이 나네요.


[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⑧기술진보] 80. 실패로 끝난 IT 독립프로젝트

[중앙일보] 입력 2005.09.07 11:07 / 수정 2006.03.29 00:34

중형 컴퓨터 타이콤과 운영체제 K-DOS

 

▶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개발에 성공한 중형 컴퓨터인 타이콤의 개발팀이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


“IBM·MS와 어깨 겨룬 자부심에 뿌듯"


“1991년은 ‘정보기술(IT) 독립’을 선언한 해였습니다. 국책 연구프로젝트로 추진된 국산 중형 컴퓨터‘타이콤’과 한국형 PC 운영체제(OS) ‘K-DOS’가 발표됐거든요. IT산업에서 핵심이었던 중형컴퓨터와 PC 운영체제는 그 이전까지 해외에 100% 의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난달 23일 서울 삼성동의 한국RFID(무선바코드)협회에서 만난 현오중 전문위원(옛 한국컴퓨터연구조합 사무국장). 그는 “당시 삼성ㆍ금성 등 참가업체들은 IBM이나 MS와 어깨를 겨룬 자부심에 뿌듯했다”고 회상했다. 과학기술처(현 과학기술부) 산하였던 연구조합은 국책 프로젝트에 참여한 민간기업들을 관리했다.


정부와 민간기업이 기술 자립을 위해 똘똘 뭉쳐 추진했던 타이콤과 K-DOS 사업은 그러나 실패했다. 94년을 끝으로 타이콤은 행정전산용으로, K-DOS는 초등학교 교육용PC로 일부 깔리는 수준에서 생명을 다했다. 그나마 지금은 모두 철거됐다. 미국의 통상 압력에다 IBMㆍMS의 기술혁신을 따라가지 못해 보급단계에서 경쟁력을 잃어서다.


현 위원은 개인자료실로 가더니 먼지가 뽀얗게 쌓인 보고서들에서 두 권의 책을 꺼냈다. 『타이콤 백서』와 『K-DOS설명서』 였다. 그러곤 잉크가 누렇게 번진 전화번호 수첩에서 그때 담당자들의 연락처를 적어 주었다.


기자는 그들을 찾아 조각난 퍼즐들을 맞춰 나갔다. 이들은 두 프로젝트의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IT강국의 기반을 다진 성과를 높게 평가했다.


◇IBM을 겨냥한 타이콤 = 타이콤 프로젝트는 공공기관용 중형 컴퓨터(주전산기)를 개발하는 사업이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삼성전자ㆍ금성사(현 LG전자)ㆍ현대전자(매각)ㆍ대우통신(매각) 등 4대 기업이 공동 개발기관으로 참여했다. 현 위원은 “4개사에서 각각 50명 등 200여 명이 대전의 ETRI로 모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오길록 ETRI 개발사업단장과 김건중 삼성 상무,김진찬 대우 전무 등이 주축이었다.


타이콤은 IBMㆍNEC 등 외국업체들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91년 7월 개발이 끝났다. 박봉기 현등시스템 사장(금성사 이사)은 “그해 말 정부 및 관련업계 고위 인사와 언론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공식 발표행사가 화려하게 열렸다”고 회고했다. 타이콤은 94년까지 249대가 행정기관에 깔렸다. 그 과정에서 첨단 기술 확보와 우수 인력 육성이 이뤄졌다. 그린벨의 김 사장은 “그 이전엔 공공기관이 외국에서 컴퓨터를 도입할 때 담당자는 ‘눈뜬 장님’이었다”며 “구입에서 설치, AS까지 손 하나 못 대고 외국업체에 맡겼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타이콤 개발로 300명 이상의 우수 인재가 나왔고, 이후 매년 200명씩 컴퓨터 인력이 배출됐다. 또 외국 전산망 컴퓨터에 문제가 생길 때 웬만한 AS는 타이콤 개발자들이 해결했다.


◇MS-DOS의 대항마 K-DOS = 타이콤이 국가 정보화사업이라면 K-DOS는 국민 정보화프로젝트였다. 현 위원은 “전산망조정위에서 국민에게 값싼 PC를 만들어 보급하는 방안을 연구하다 K-DOS 프로젝트가 나왔다”고 말했다. 당시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국민 보급형 PC’(16비트)를 만들려다 보니 제조원가 비중이 크면서도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이 운영체제였다. 특히 MS는 OS(MS-DOS)를 독점 공급하면서 비싸게 팔았다.


89년 삼성ㆍ금성ㆍ현대ㆍ대우 등 대기업에 중견업체들까지 참여해 개발이 시작됐다. 서울 마포의 한국컴퓨터 사무실에서 9개사 30여 명이 모였다. 당시 한국컴퓨터연구조합 국민PC분과위원장이었던 김태영씨는 “5만 줄의 프로그램 내용을 일일이 분석하고, MS에 제소당하지 않으려고 법적 장치도 마련했다”고 회고했다. 91년 말 한국컴퓨터연구조합은 ‘K-DOS’ 프로그램이 담긴 디스켓과 사용설명서 책자를 내놓았다. 처음엔 국산 PC 운영체제 개발보다 MS-DOS 가격을 떨어뜨리려는 속셈이 더 컸다고 했다.


이원호 기자 

 

 

◇K-DOS란=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해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던 PC의 두뇌 격인 운영체제 ‘DOS’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한 한국형 DOS. PC가 작동되도록 하는 각종 명령어와 작동 방법을 모아 놓은 소프트웨어다. 1991년 개발 완료했다.

 

◇타이콤이란=한국이 개발한 첫 중형 컴퓨터. IBM 등 외제 일색이었던 중형 컴퓨터를 국산화하기 위한 첫 시도였다. 1991년 개발해 94년까지 행정전산망용 컴퓨터로 보급한 뒤 그 수명을 다했다. 삼성전자·금성사·현대전자·대우통신이 개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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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파일> 국산 대형컴퓨터 사업 명암

권정숙 기자 jskwon@dt.co.krdt.co.kr | 입력: 2000-12-28 15:54

[2000년 12월 28일자 11면 기사]


2000년대 정보화시대 도래에 대비해 컴퓨터 기술의 독자성을 확보하고 국내 정보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한다


지난 1985년 4월 정부의 행정전산망 기본계획 수립과 함께 출발한 국산 주전산기 개발 사업은 이처럼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기간 전산망 사업이 시작되고 서버급 컴퓨터에 대한 국내외 일반의 수요가 본격화될 무렵, 당시 상공자원부와 체신부, 과학기술처 등 3개 정부부처는 경제적 행정전산망 구축은 물론 국내 일반 컴퓨터 수요 대체와 나아가 수출까지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주도하에 현대전자(후에 현대정보기술 이관)·대우통신·LG전자·삼성전자 등 당시 내노라하는 대기업의 참여를 유도, 국산 주전산기 개발에 착수했다.


88년 5월, 총 335억원을 들어간 국산 주전산기I가 첫선을 보인다. 미국 톨러런트사의 제품을 국내 조립하는 형태였지만 이를 통해 기반기술을 익히고 자신감도 얻었다. 명실상부한 첫 국산 제품인 주전산기II는 91년 7월 개발 완료돼 다음해인 92년 4월 타이컴이라는 자체 브랜드로 상용화됐다. 행정전산망을 중심으로 총 772대가 판매되는 가시적인 수치도 얻었다. 이어서 95년 1월 상용화된 주전산기III는 외국 제품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불안정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주전산기II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기술적인 성과였다.


주전산기 사업이 순항하던 95년 5월, 또 하나의 대형 컴퓨터 국산화 사업이 시작된다. 상공자원부가 서울대 컴퓨터신기술사업단과 손을 잡고 미국 NCR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대형 병렬 컴퓨터를 국산화하기로 한 것. 주전산기가 중형급 서버으로 대형 컴퓨터의 필요성이 제기된 데다 이미 상용화된 선진기술을 받아들임으로써 세계 시장 진출이 보다 용이하리라는 계산이 깔린 결정이었다. 


이 사업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정보기술이 참여, 3년간 167억원이 투자한 끝에 32웨이 초병렬처리(MPP) 방식의 고성능 컴퓨터인 엔터프라이즈 서버 I을 완료됐다. 당시 HP나 썬의 최상위 레벨의 유닉스 컴퓨터와 맞먹는 성능이 구현돼 국산 컴퓨터 기술을 한차원 높였다는 찬사도 받았다.


이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부 주도의 국산컴퓨터 개발 사업은 90년대 말을 기점으로 실패한 것으로 판명되기 시작했다. 아키텍처 상으로 외산과 비견되던 주전산기IV는 개발 완료해 놓고도 주전산기 4사가 상용화를 포기했으며, 엔터프라이즈 서버 I도 시장에 나오기 전에 연구실에서 사장됐다. 


MPP 방식을 채택한 국산 컴퓨터와 달리 세계 시장의 조류는 NUMA(비대칭형메모리접근)와 SMP(대칭형다중처리) 방식으로 흘러갔다. 독자 개발로 핵심 기술을 확보한 것은 좋았지만 세계 시장 표준과 멀어지면서 상용 애플리케이션의 턱없는 부족을 낳았고, 결국 세계시장은 커녕 국내 시장에서도 퇴출당할 위기에 몰린 것이다. 


세계화 시대, 국가의 보호막에 안주한 우물안 개구리식 독자기술 개발이 가져온 실패였다. 관련업계 한 인사는 세계 일류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요즘에도 국산 SW나 장비를 써달라고 국내 기업들에게 애국심을 강조하는 정부에게 기업 경쟁력은 누가 책임져 주냐고 묻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산 컴퓨터 개발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국산화에 따라 시스템 아키텍처 기술, 칩셋 기술, 시스텝 버스 등 제반 기술의 디자인과 통합능력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노벨, SCO, 컴팩 등 세계 유수의 기업과 대등한 기술 제휴를 추진할 수 있었다. 저장장치 10층 PCB기판 기술은 국내 처음 개발됐으며, 저장장치와 전원공급장치 등 인근 분야과 각종 부품의 국산화도 부추기는 효과를 낳았다. 당시 ETRI에서 국산 주전산기 개발을 주도한 임기욱부장는 하드웨어·시스템 소프트웨어·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와 각종 연관 분야에서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었고, 공공시장에서 외산기종이 독식하고 폭리를 취하는 부작용은 최소한 막았다며 국산서버 개발사업의 성과를 잘 계승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 세계 시장을 전제로 한 설계와 개발전략을 짜야한다고 촉구한다. 


국산 대형 컴퓨터 사업은 핵심 기술 국산화가 가져올 수 있는 성과와 한계를 모두 보여주는 대표적인 교훈으로 한국 컴퓨터 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권정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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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신기술 개발, 官 아닌 中企 주도해야”

2008년 08월 20일 (수) 김보성  webmaster@dailygrid.net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IT 신기술 개발을 정부 산하기관들보다는 관련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을 주축으로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런 주장을 펼친 인물은 IT기업인 한국인포메티카에 몸담고 있는 정인호 본부장.   


정 본부장은 특이하게도 80년대말에 국내 기술로 개발된 국산 주전산기와 밀접한 인연을 맺고 있다.


국산 주전산기인 ‘타이컴’의 개발 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봤으며, 국내에 설치된 150대의 타이컴 중 80대에 직접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국산 주전산기의 탄생과 쇠락을 동시에 지켜볼 수 있었던 것.


정 본부장은 국산 주전산기 개발을 외산 IT기업보다 3~4년 먼저 시작을 했지만 개발 과정이 길어져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국산 주전산기 ‘타이컴’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주도로 삼성, 대우, 현대 등 대기업과 연합해 정부 예산으로 유닉스 서버 시스템을 개발했던 사업이다.


총 5년이 걸려 인텔의 286칩을 사용하는 시스템의 기본체를 개발했고, 다시 3개 대기업들이 기본체를 중심으로 2년 동안 각자 개발에 들어가 ‘타이컴’을 완성했다.


이 시기에 미국계 IT기업인 씨퀀터라는 회사는 독자적으로 약 1년 6개월에 걸쳐 인텔의 386칩을 사용하는 유닉스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회사는 국산 주전산기보다 성능이 한층 진일보한 서버를 짦은 기간에 걸쳐 개발을 완료할 수 있었다.


국산 제품인 ‘타이컴’이 씨퀀터사의 제품보다 가격이 더 높으면서 안정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실패할 것이라는 예상은 불을 보듯 명확했던 것.  


게다가 ETRI는 그당시에 국산 데이터베이스(DB) 소프트웨어 개발도 착수, ‘바다 DB’라는 코드명으로 진행했었다.


ETRI는 바다 DB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후 국내 대기업에 관련 기술을 이관해 삼성은 ‘코다’, 대우는 ‘한바다’라는 이름으로 제품화했다.


93년에 등장했지만 이 소프트웨어는 지원하는 툴이 없었고 성능의 결함까지 발견됐다.


때문에 이들 대기업들은 단 한 개의 제품을 팔지 못했고 최초의 국산 DB 소프트웨어는 수식어를 뒤로 한채 국내 IT시장에서 사장됐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정인호 본부장은 “비록 현재 외국계 기업에 몸담고 있지만 국내 IT 중소기업들이 외산 제품에 맞서 선전했으면 한다”며 “과거 국산 주전산기 개발 및 보급 등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하루하루 빠르게 변하고 있는 IT 신기술 개발은 정부 산하기관보다는 역동적으로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중소 IT기업들이 주도를 해야 한다는 확신이 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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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주소: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3030402011560786002

국산 HW산업 육성 R&D투자 시급


정용철 기자 jungyc@dt.co.kr | 입력: 2013-03-03 20:29

 

 

국내 서버, 스토리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외산장비의 비중을 줄이고, 국산업체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연구개발(R&D) 투자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3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지식경제부가 지원하는 서버, 스토리지 관련 R&D 예산은 연간 30억원 수준이다. IT 경쟁력의 핵심이 하드웨어(HW)에서 소프트웨어(SW)로 변하면서 연간 1500억원이 넘는 SW R&D 예산에 비해 HW 산업은 상대적으로 홀대받고 있다.


지경부의 서버, 스토리지 R&D 과제는 2011년부터 차세대 컴퓨팅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에너지절감형 그린 서버 기술개발'과 `하이브리드 스토리지 기술개발'사업 두 개뿐이다. 이들 사업은 지난해 기준으로 연간 17억원과 15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정부와 일부 업계에서는 사실상 SW가 IT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만큼 자원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서버와 스토리지 같은 HW산업에 투자하려면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쪽으로 자원을 투입해야 하지만 이미 제품 개발이 끝난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서버, 스토리지 개발은 아니더라도 요소기술인 반도체나 시스템 개발은 지속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과제가 적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미 국내 시장을 외산제품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산제품 개발이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격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외산장비만 쓰다가는 IT주권 상실은 물론 연관 산업 발전도 저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고대식 한국정보기술학회 회장(목원대 교수)은 "서버와 스토리지와 같은 IT산업의 기간계 제품을 외산 제품만 사다보면 좋은 국산SW를 개발해도 박스라고 무시하는 외산HW 때문에 활용 못할 수도 있다"며 "국산 컴퓨터 개발을 위한 타이콤 프로젝트가 실패한 이후 정부나 업계 모두 개발은 커녕 도망가기에 급급하다"고 주장했다.


1989년 정부는 IBM이 주류를 이루던 공공기관 주전산기기를 국산화하기 위해 민ㆍ관 합동으로 타이콤 프로젝트를 출범했다. 당시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삼성전자, LG전자(당시 금성사), 대우통신, 현대전자 등 국내 대표기업이 참여했지만, 외산제품에 밀려 1991년 이후 더이상 개발이 진행되지 않았다.


당시 서버와 같은 주전산기기의 국산화는 실패했지만, 이 프로젝트로 인해 외산제품에 대한 기술종속성 문제와 국산 기술 축적, 인력양성 등의 부수적인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 교수는 "오라클이 DBMS뿐 아니라 썬마이크로시스템을 인수하면서 어플라이언스 형태로 장비를 공급해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며 "우리도 타이콤 프로젝트 실패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국산SW에 가장 최적화된 국산HW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업계 역시 정부의 적극적인 기술개발 지원으로 외산 제품과 차별화를 이끌어나가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외산제품과 차별화를 이룰 수 있는 ARM기반 마이크로 서버 개발을 위해 정부에 적극적으로 지원을 요구했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거부했다"며 "현재 낭떠러지에 있는 국산 서버산업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적극적인 투자를 지원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용철기자 jun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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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hen Computers Went To Sea
글쓴이 : 백선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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