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랜드전쟁

[스크랩] 포클랜드전쟁 7편 - 사우스 조지아 섬 탈환 작전

Humancat 2007. 6. 18. 17:37

영국공군의 빅터 K2 급유기가 1시간 반 동안 영국 본토 전체보다 넓은 면적의 해상을 레이더로 훑어 이곳에 아르헨티나 군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1982년 4월 20일, 영국군은 사우스 조지아 섬을 되찾는 <패러켓> 작전 개시를 결정하고 먼저 육군 SAS 특수부대원을 침투시켜 사우스 조지아 섬의 아르헨티나군 세력을 알아보기로 했다.

        

이에 앞서 방공구축함 <앤트림>, 호위함 <플리머스>, 군수지원함 <타이드스프링>으로 이루어진 <Task Group 317.9>가 4월 7일에 편성되었고, 이들은 사우스 조지아 섬에 상륙할 해병 42코맨도대대의 M중대와 육군 SAS 및 해병 SBS 특수부대를 태우고 317 기동부대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 사우스 조지아 섬으로 떠났다. 여기에 더해 핵추진 공격형 잠수함 <콩커러>가 317.9 전단을 엄호하도록 명령을 받고 사우스 조지아 섬 탈환 작전에 투입되었다.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와 사우스 조지아 섬을 침공해 점령했을 때부터 이미 남대서양에 있었던 쇄빙함 <엔듀런스> 또한 317.9 전단에 추가되었고, 페르시아 만에 파견된 영국해군의 <아밀라 패트롤>을 지원하기 위해 인도양에 있었던 군수지원함 <브램블리프>도 아프리카 남쪽 끝의 희망봉을 돌아 사우스 조지아 섬으로 갔다. 사우스 조지아 섬을 탈환하는 작전 명령은 명령을 받고 작전을 수행할 부대 말고는 다른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전달되었다. 무선 통신을 쓰지 않고 명령을 종이에 써서 통에 담아 영국공군의 님로드 해상초계기가 방공구축함 <앤트림>의 위로 날아가 낙하산을 달고 떨어뜨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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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사우스 조지아 섬

      

아르헨티나군은 4월 3일 사우스 조지아 섬을 점령한 다음 항복한 영국 해병대원을 영국으로 돌려보낸 것 말고는 별다른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영국의 과학 관측 기지를 그대로 두어 여기에는 15명의 영국 과학자 및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온 TV 방송 작가들이 마음대로 영국군과 무선 통신까지 할 수 있었다. 영국 외무부에서는 외부의 지원 없이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척박한 사우스 조지아 섬을 되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쓸 것 없이 여기에 남아있는 영국인 15명이 영국 주권의 상징으로 충분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마거릿 대처 총리는 아르헨티나에 대한 성공적인 첫 반격을 할 곳으로 사우스 조지아 섬을 꼽았다.

     

포투나 빙하

      

4월 21일 아침, 방공구축함 <앤트림>과 군수지원함 <타이드스프링>은 육군 SAS 특수부대를 상륙시키기 위해 사우스 조지아 섬의 <포투나 빙하>로 다가갔다. SAS를 빙하로 데려다 줄 헬리콥터 조종사들은 빙하에 상륙하겠다는 SAS의 생각이 무모한 짓이라고 여겼지만 SAS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SAS는 <앤트림>에 탑재된 웨섹스 HAS3 대잠수함전 헬리콥터 1대, <타이드스프링>에 탑재된 수송 웨섹스 HU5 헬리콥터 2대에 나눠 타고 갈 참이었는데 마침 초속 130km의 강한 바람이 불어 비행이 너무나 위험했다. 이렇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발이 묶여 있다가 1시간 반이 지나서야 바람이 잦아들었고, <앤트림>의 <이언 스탠리> 해군소령이 조종하는 웨섹스 HAS3가 빙하 주변의 날씨를 알아보기 위해 날아올랐다. 포투나 빙하를 정찰한 스탠리 해군소령은 날씨는 좋아졌지만 얼마나 오래될 것인지는 알 수 없고, 빙하에 착륙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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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림>과 동형함인 "카운티"형 구축함 햄프셔와 웨섹스 헬리콥터

          

스탠리 해군소령의 웨섹스 HAS3가 <앤트림>으로 돌아온 다음 작전 실행 여부에 대해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헬리콥터 조종사들은 빙하에 착륙하는 것이 너무 무모하다고 반대했지만 결국 SAS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이들은 웨섹스 HAS3 1대와 웨섹스 HU5 2대에 나눠 타고 포투나 빙하로 날아갔다. 그러나 강한 바람이 일으킨 눈보라 때문에 착륙은 불가능했고, 함정으로 되돌아온 다음 날씨가 나아질 때까지 시간을 보내고 다시 떠나 두 번째 시도에서야 빙하에 내릴 수 있었다. SAS 대원들을 포투나 빙하에 내려 놓은 헬리콥터 3대는 무사히 모함으로 돌아갔지만 SAS에게는 이제 고난의 시작이었다. 이들은 매서운 남극 날씨 속에서 5시간에 겨우 500미터만 움직일 수 있었고, 강한 바람에 4개의 텐트 중 2개가 찢어져 절반만 텐트 안에서 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결국 22일 아침, 얼어 죽을 수도 있는 위기에 빠진 SAS 대원들은 즉시 철수시켜달라고 <앤트림>에 무선으로 요청했다.

       

<이언 스탠리> 해군소령의 활약

        

전날 SAS 대원들을 포투나 빙하에 내려놓은 3대의 웨섹스 헬리콥터들이 다시 그곳으로 날아갔지만 앞을 볼 수 없는 강한 눈보라 때문에 이들을 찾지 못하고 모함으로 돌아왔고, 두 번째 시도에서 이들의 위치를 찾아내고 착륙했다. 하루 종일 꽁꽁 얼어붙는 추위와 매서운 바람에 시달린 SAS 대원들은 이 3대의 헬리콥터에 서둘러 올라탔고 이제 이들의 고난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남극의 날씨는 이들이 무사히 돌아가게끔 호락호락 내버려두지 않았다.

         

웨섹스 HU5 수송 헬리콥터 1대는 이륙하자마자 눈보라에 휩싸여 조종사가 방향 감각을 잃었고, 로터가 땅을 치며 약 50미터를 미끄러져 가서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추락한 웨섹스 HU5에서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고, 이들은 남은 웨섹스 HAS3 1대와 웨섹스 HU5 1대에 나눠 탔다. 그러나 날씨는 또 한번 영국군에게 매서운 맛을 보여주었다. 남은 웨섹스 HU5 1대마저 앞서 가는 웨섹스 HAS3을 따라가다가 눈보라에 휩싸여 밖이 온통 하얗게만 보이는 “white out” 상황에 빠졌고, 이 웨섹스 HU5는 산등성이에 부딪히고 옆으로 넘어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에도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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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해 옆으로 넘어진 웨섹스 HU5

           

이제 남은 헬리콥터는 방공구축함 <앤트림>에 탑재된 웨섹스 HAS3 대잠수함전 헬리콥터 1대뿐이었고, 여기에 모든 SAS 대원들이 탈 수는 없었다. 이에 스탠리 해군소령은 일단 자신의 헬리콥터에 탄 SAS 대원들을 <앤트림>에 데려다 놓은 다음 담요와 구급약을 싣고 다시 추락 현장으로 날아갔다. 스탠리 해군소령의 웨섹스 HAS3는 날씨가 너무나 나빠 착륙은 할 수 없었지만 추락 현장에 있는 SAS 대원들과 무선 통신은 성공해 이들이 모두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별 수 없이 일단 <앤트림>으로 돌아온 스탠리 해군소령은 연료를 채우고 두 번 더 구조를 시도했지만 날씨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고, 해가 저물기 전의 마지막 시도에서 드디어 추락 현장에 착륙할 수 있었다. 어느 한 명이라도 남겨두면 밤사이 얼어 죽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스탠리 해군소령의 웨섹스 HAS3에는 생존자들이 빈틈없이 빽빽하게 올라탔고, 스탠리 해군소령은 허용된 무게를 무려 1,000kg이나 넘긴 채로 무사히 웨섹스 HAS3 헬리콥터를 이륙시켜 <앤트림>으로 돌아갔다. 포투나 빙하에서 얼어 죽을 뻔한 SAS 대원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한 스탠리 해군소령은 전쟁이 끝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수훈장(DSO, Distinguished Service Order)을 받았다.

         

SAS가 빙하에 내려 정찰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다 매서운 날씨 때문에 정찰을 못하고 웨섹스 헬리콥터 3대 중의 2대를 잃을 동안 아르헨티나군은 영국군이 사우스 조지아 섬에 와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고, 이 때 영국군은 날씨와 싸우다 제풀에 지친 꼴이었다. 사우스 조지아 섬에서 손쉽게 첫 성공을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던 노트 국방장관과 르윈 합참의장에게 처음 전해진 소식은 SAS 대원들을 구조하려다 웨섹스 헬리콥터 2대가 추락했다는 것이었고, 죽은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르윈 합참의장은 사실대로 대처 총리에게 보고하고는 “전쟁에서는 일이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덧붙였고 차분히 보고를 들은 대처 총리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 “일이 그렇게 자주 잘못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잠수함 <산타 페>의 출동

        

아르헨티나의 육해공 3군 중에서 사우스 조지아 섬의 방위를 책임진 곳은 해군이었다. 포클랜드 침공을 강력히 주장한 아나야 해군대장이 사우스 조지아 섬을 지키는 책임을 직접 맡았는데, 처음에 그는 이곳을 점령한 아르헨티나군을 철수시키고 과학 관측 기지만 두려고 했다. 그러나 영국이 예상과 달리 기동부대를 보내 포클랜드와 사우스 조지아 섬을 되찾겠다는 결의를 보이자 아나야 해군대장의 생각도 바뀌었다. 사우스 조지아 섬은 아르헨티나 본토는 말할 것도 없고 포클랜드로부터도 너무나 멀어 이곳을 지키는 것은 아르헨티나군의 능력 밖이었다.

        

그래서 아나야 해군대장은 이곳을 사실상 포기하고 영국군이 오면 사우스 조지아 섬에 주둔한 아르헨티나군 부대에게 싸우지 말고 그냥 항복하라고 할 생각이었지만 곧 마음이 바뀌어 약 40명의 증원 병력을 미국제 GUPPY형 디젤/전기추진 잠수함 <산타 페>에 태워 사우스 조지아 섬으로 보냈다. 이들이 아나야 해군대장으로부터 받은 명령은 영국군이 오면 맞서 싸우되 영국군의 전력이 압도적이면 항복해도 좋다는 것이었다. 아나야 해군대장은 영국군이 사우스 조지아 섬을 손쉽게 되찾으면 상처 입은 자존심을 어느 정도 되살릴 것이고, 포클랜드까지 되찾기 위한 본격적인 전쟁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아르헨티나 군부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4월 23일, <앤트림>의 함장이자 317.9 전단의 지휘관인 <브라이언 영> 해군대령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 월드 서비스의 뉴스를 듣다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비밀이어야 하는 영국군이 사우스 조지아 섬으로 다가가고 있고 곧 상륙한다는 사실이 영국 방송의 전파를 타고 전세계에 퍼지고만 것이었다. 다음 날 영국군이 엿들은 아르헨티나군의 무선 통신에서도 영국 전투함 2척과 수송함 1척이 언급되었고, 이것은 317.9 전단이 아르헨티나군에게 발견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이 날 사우스 조지아 섬의 영국 과학자들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항공기가 위로 지나갔다고 영국군에게 보고했고, 영 해군대령은 이것이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아르헨티나공군의 C-130 수송기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조금 지나 두 번째 C-130이 날아왔고, 한 때 호위함 <플리머스>를 눈으로 보고 식별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이러한 정찰 비행에 대해 <플리머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317.9 전단의 함정들은 아직 아르헨티나군 정찰기를 공격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지 못했고, 이 C-130은 호위함 <플리머스>의 시캣 함대공 미사일이나 114mm 함포의 사거리 밖에 있었다.

         

그러나 영국군만 위치가 발각된 것은 아니었다. 영국군은 아르헨티나해군 잠수함 <산타 페>가 4월 9일에 아르헨티나 본토의 기지를 떠나 바다로 나왔다는 것을 4월 18일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산타 페>가 왜 바다로 나왔는지 그 의도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지 못했고, 목적지가 사우스 조지아 섬일 것이라는 정도만 추측하고 있었다. 영국군은 <산타 페>가 4월 22일에 사우스 조지아 섬에 도착해 다음 날 어떤 알 수 없는 작전을 수행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23일 쇄빙함 <엔듀런스>는 <산타 페>가 내는 전파를 잡아냈다. 전파가 날아온 곳을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사우스 조지아 섬 주변에 아르헨티나해군 잠수함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확실했고, 이를 요격하기 위해 핵추진 잠수함 <콩커러>는 사우스 조지아 섬에서 서쪽으로 70 마일 떨어진 곳을 초계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콩커러>의 통신 안테나는 거친 파도에 약간 부서져 있었고, 이 때문에 송신과 수신에 시간이 원래보다 더 걸렸다. 결국 <콩커러>가 명령을 받았을 때는 24일이 되어 있었고, <산타 페>는 <콩커러>가 <산타 페>를 요격할 수 있는 위치를 이미 지나가버렸다. 이에 영 해군대령은 호위함 <플리머스>, 군수지원함 <타이드스프링>, <브램블리프>, 그리고 쇄빙함 <엔듀런스>에게 <산타 페>가 있을만한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물러나 있도록 명령했다.

      

아르헨티나공군 C-130의 정찰 비행은 이제 잠수함 <산타 페>가 공격할 표적을 찾기 위한 것으로 인식되었고, SAS 대원들을 포투나 빙하에서 구조하려다 웨섹스 HU5 헬리콥터 2대를 잃은 317.9 전단은 증원 부대가 필요했다. 다행히 증원 부대는 이미 준비되어 있어 22형 호위함 <브릴리언트>가 링스 HAS2 헬리콥터 2대를 싣고 317.9 전단에 합류하기 위해 오고 있었지만 <브릴리언트>는 4월 25일에야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영 해군대령은 작전의 진행이 늦어 상부로부터 재촉을 받고는 일단 방공구축함 <앤트림>만으로 상륙 부대를 사우스 조지아 섬에 내려놓고 전속력으로 빠져 나와 다른 함정들과 합류하기로 결심했는데, <앤트림>이 사우스 조지아 섬으로 다가가기 직전 또 아르헨티나공군의 C-130이 하늘에 나타났다. C-130이 자신의 위치를 잠수함 <산타 페>에게 알려 상륙 부대를 사우스 조지아 섬에 내려놓는 도중에 공격 당할 것을 걱정한 영 해군대령은 일단 후퇴해 다른 함정들과 합류했고, 작전이 너무 늦어지는 것을 걱정한 영국 본토 노스우드의 지휘소에서는 아예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사우스 조지아 섬으로 돌려 317.9 전단을 지원하는 것까지 생각했다.

      

헬리콥터와 잠수함의 싸움

        

앞서 포투나 빙하에서 매서운 날씨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겨우 철수한 SAS는 우여곡절 끝에 보트를 타고 침투에 성공했고, 이들은 아르헨티나군이 주둔한 두 곳, 그리트비켄과 리스 중에서 리스를 감시했다. 영 해군대령은 영국 함정들이 멀리 물러나서 이제 잠수함 <산타 페>가 4월 24일 대낮에 그리트비켄이나 리스에 입항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SAS가 감시하고 있지 않은 그리트비켄에 워스프 HAS1 헬리콥터를 보내 정찰하도록 쇄빙함 <엔듀런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때는 바다 위로 떠오른 잠수함은 무조건 공격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져 있었는데, 이는 핵추진 잠수함 <콩커러>가 작전 중에 바다 위로 떠오를 일은 없으니 이런 잠수함은 반드시 <산타 페>일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엔듀런스>는 워스프 HAS1가 정찰을 하다가 바다 위로 떠오른 <산타 페>를 발견하면 곧바로 공격할 수 있도록 이 헬리콥터에 AS12 공대함 미사일을 달아 보냈다. 이날 <산타 페>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대신 <엔듀런스>의 위로 아르헨티나공군 보잉 707이 지나가 <엔듀런스>의 위치가 아르헨티나군에게 알려지고 말았다.

        

317.9 전단의 기함 <앤트림>에서는 잠수함 <산타 페>가 주변에 있는 한 상륙 작전을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일었고, 영 해군대령은 <산타 페>가 밤에 바다 위로 떠오른 채로 그리트비켄이나 리스에 입항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분석에 따라 이때 <산타 페>를 찾아 잡기로 결심했다. 4월 25일 아침 호위함 <플리머스>와 <브릴리언트>가 기함 <앤트림>과 합류했고, 스탠리 해군소령이 조종하는 웨섹스 HAS3 대잠수함전 헬리콥터가 Mk11 폭뢰 2발을 싣고 출격했다. 22형 호위함 <브릴리언트>에서는 링스 HAS2 헬리콥터 1대가 Mk46 어뢰 2발을 싣고 뒤따랐고, 호위함 <플리머스>와 쇄빙함 <엔듀런스>의 워스프 HAS1 헬리콥터들은 AS12 공대함 미사일을 달고 대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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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빙함 엔듀런스와 워스프 헬리콥터

        

스탠리 해군소령은 레이더로 바다 위를 훑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해안으로부터 5마일 떨어진 해상에 떠 있는 <산타 페>를 탐지했고, 가까이 다가가 눈으로 확인했다. 곧바로 그는 최대 속도로 돌진해 Mk11 폭뢰 2발을 던졌다. 투하된 폭뢰 2발은 모두 <산타 페>의 바로 옆에서 터져 잠수할 때 꼭 필요한 밸러스트 탱크를 부숴버렸고, <산타 페>는 이제 물 속으로 잠수할 수 없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링스 HAS2가 Mk46 어뢰 1발을 떨어뜨렸고, 물 위로 떠오른 표적은 공격하지 못하는 이 어뢰는 <산타 페>의 아래에서 빙빙 돌았다. 폭뢰에 밸러스트 탱크가 부서지고 아래에서는 어뢰가 기다리고 있는 <산타 페>에게 남은 선택은 그대로 항구로 도망가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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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12 미사일을 쏘는 워스프 HAS1

            

상처를 입고 도망가는 <산타 페>에게 헬리콥터들이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엔듀런스>의 워스프 HAS1 헬리콥터들이 차례로 AS12 공대함 미사일을 <산타 페>에게 쏴댔다. 이 중의 1발이 <산타 페>의 사령탑을 뚫고 반대쪽으로 튀어나와서 터졌고, 수병 1명이 한쪽 다리를 잃고 말았다. 그리트비켄의 항구에 닿을 때까지 웨섹스, 링스, 워스프 헬리콥터들로부터 끊임없이 기관총탄 세례를 받은 <산타 페>의 수병들은 사령탑 위로 나와 기관총으로 대항했지만 잠수함으로서 <산타 페>의 생명은 끝장이 났고, 이들은 항구의 부두에 <산타 페>를 좌초시키고는 배를 버리고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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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초한 <산타 페>

     

이제 가장 성가신 장애물이 사라진 영국군은 그대로 상륙 작전을 감행했다. <앤트림>과 <플리머스>는 그리트비켄 항구로 다가와 114mm 함포로 아르헨티나군 진지 주변을 때렸고, 이는 아르헨티나군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겁을 먹고 항복하게끔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함포 사격이 계속되는 동안 <앤트림>의 웨섹스 HAS3 헬리콥터 1대와 <브릴리언트>의 HAS2 헬리콥터 2대는 원래 대잠수함전 헬리콥터이지만 이번에는 수송 헬리콥터 노릇을 맡아 45분 동안 79명의 해병대원과 특수부대원을 상륙시켰다.

         

상륙한 이들은 아르헨티나군이 매복할만한 곳을 기관총과 밀란 대전차 미사일로 때려부수며 전진했는데, 멀리서 아르헨티나군 병사들처럼 보인 애꿎은 코끼리물개들만 죽고 말았다. 조심스럽게 전진한 영국군이 부두까지 왔을 때는 아르헨티나군 진지에 항복을 뜻하는 하얀 깃발이 보였고, 사실 이 하얀 깃발은 함포 사격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이미 올려져 있었다. 곧 사우스 조지아 섬에 있는 아르헨티나군의 선임 장교이자 <산타 페>의 함장인 <호라치오 비케인> 해군대령은 항복하겠다고 영국군에게 무전을 보냈고, 약 140명의 아르헨티나군이 포로로 잡혔다. 이 날 저녁 비케인 해군대령은 <앤트림>으로 초대되어 저녁 식사를 하고 공식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의 사우스 조지아 섬 지배는 22일만에 끝났고, <앤트림>은 “사우스 조지아의 그리트비켄에 영국 국기와 해군기가 펄럭이고 있음을 여왕폐하께 아룁니다. 신이여 여왕을 지켜주소서.”라는 고전적인 전문을 본국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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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아르헨티나군 선임 장교

    

아르헨티나군은 보잉 707이 사우스 조지아 섬 주변에서 영국 함정을 발견한 다음부터 리오 그란데 공군기지에 캔브라 B62 폭격기 3대를 대기시켜 두고 있었다. 25일 정오에 이 폭격기 3대는 그리트비켄 항구 바깥에 따로 떨어져 있는 영국 함정이 있으면 공격하기 위해 출격했지만 이들에게 공중 급유를 할 KC-130 급유기가 사우스 조지아 섬의 날씨가 나빠졌고 영국 함정들이 모두 이미 그리트비켄 항구 안으로 들어가 있음을 알려 작전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추가 작전도 계획되어 있었지만 사우스 조지아 섬의 아르헨티나군이 일찍 항복해버려 모두 취소되고 말았다.

          

사우스 조지아 섬 전투는 모든 군사 작전은 날씨의 영향을 피할 수 없고, 비록 2차대전 때 건조된 낡은 잠수함이지만 <산타 페>는 사우스 조지아 섬 근처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영국 함대로 하여금 멀리 물러나도록 만들어 잠수함은 그 존재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엄청난 심리적 부담을 준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또한 이 전투에서 영국군이 <산타 페>의 존재를 알아낸 수단은 <산타 페>가 낸 전파를 잡아낸 것이어서 전자전의 중요성이 잘 드러났다.

출처 : When Computers Went To Sea
글쓴이 : 백선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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